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구 구형론 (문단 편집) == 중세와 그 이후 == [[중세]] [[유럽]]에서는 [[플랫 에러|종교적인 이유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거부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는 잘못된 인식이 현대에 널리 퍼져 있으나, 중세시대에도 관련 지식에 접근이 가능한 학자들은 고대의 연구를 받아들여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 시대에는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가 논쟁의 중심이며,[* 그나마도 초기에는 천동설이 틀렸더라도 그럼 성경 해석을 지동설에 맞춰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둘 사이의 논쟁이 과열된 것은 천동설 지지 사제+학자 VS 지동설 지지 사제+학자에 정치적 문제라는 종교 VS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미 완성된 '''천동설은 지구 구형설[* 이 땐 완전히 증명할 수가 없어서 '설'이었다.]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아우구스티노]], [[히에로니무스]], [[암브로시우스|암브로시오]] 같은 [[그리스도교]]의 초기 교부들도 모두 지구가 둥글다는 데 동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명을 받아들여 지표면의 다른 곳에서 별자리의 위치가 변하는 것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로저 베이컨]]도 자신의 저서에 지구가 둥글다고 분명히 적었고, 캉브레의 [[대주교]]였던 [[피에르 다이이]]도 지구가 구형이라고 말했다. 15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토스카넬리는 지구 구형설을 주장하며,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좁은 바다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독일]]의 베하임은 최초의 지구의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구 구형설에 입각한 최초의 해도가 작성되었다. 학자들 뿐만 아니라 자국어로 글을 쓰던 대중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장 드 맨더빌]]의 [[여행]]이나 [[단테]]의 [[신곡]]에는 세상이 둥글다는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헛소문이 만들어져 유포된 것은 19세기 일이다.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미국]] 작가인 [[워싱턴 어빙]]이다. 그는 1828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삶과 항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콜럼버스는 지구 구형설을 받아들인 근대적 지식인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당대의 관료들과 종교인들 대부분은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그는 콜럼버스라는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이런 잘못된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본래 콜럼버스의 계획이 격렬한 반대를 받은 것은, '세상이 평평하다'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라 콜럼버스가 계획한 항해의 거리 때문이었다.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너무 짧게 계산해서 항해 거리 또한 그만큼 짧게 계산했는데, 그렇게 날려먹은 거리가 무려 '''지구 반 바퀴''' 정도나 되었던 것.[* 가장 유력한 설은 번역오류로 [[이슬람]]에서 쓰던 [[마일]] 단위로 지구 둘레를 산출한 9세기 아랍 천문학자 알 파르가니(라틴어 이름 알프라가누스)가 제시한 수치를 더 짧은 유럽-로마 마일로 생각해서 이런 초대형 오차가 발생했다는 것.] 지구의 둘레를 비교적 정확히 알던 당시 학자들과 관료들은 콜럼버스의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당연히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으며, 콜럼버스를 놔두면 보나마나 바다 한복판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콜럼버스의 계산대로라면 아메리카 대륙의 위치에 인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의 거리는 지구 반바퀴에 가까울 정도로 콜럼버스는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오차를 내버린 것이었다. 덤으로 이런 오류투성이 이론을 내세우면서 엄청난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던 콜럼버스의 행동은 사기꾼과 유사했다. 어찌보면 그의 항해를 '뜯어 말린 것'은 그 당시에도 지금 시점에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작 콜럼버스는 나중에 아메리카 대륙이 자신의 이론과 맞지 않자 '''지구구형론을 부인'''해버렸다.[* 정확히는 지구가 배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콜럼버스]] 문서 참조.] 이렇듯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옛날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흔히 중세 시대 사람들의 가졌을 법한 이미지로 많이 등장하는 '바다 건너에 세상의 끝이 있고 그곳에 악마나 지옥이 있다'는 식의 믿음은 실제로는 없었다. 다만 그 시대 지리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주변부나 남북극 부근 등 알려지지 않은 지역(Terra incognita)이나 위험한 지역(Terra pericolosa)에 "여기에는 용이 산다"(Here be dragons) 식으로 지도에서 얼버무리기도 했다. 학자들이 이런 잘못된 상식을 고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http://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598|#]] 사람들의 편견이 워낙 깊게 박힌터라 고쳐지기까지는 엄청난 세월이 걸릴 듯 싶다. [[근세]]의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는 [[마젤란]](1480~1521)이 이끄는 선단이 세계일주에 성공[* [[마젤란]] 본인은 중간에 [[필리핀]]에서 원주민들이랑 싸우다 죽어 세계일주에는 실패했다.]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하였다. 하지만 "세계가 거대한 거북의 등껍질 위에 있다." 하고 우기는 중산층과 새로운 과학지식을 강연하는 연사의 이야기가 여전히 일화로 인용될 정도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은커녕 읽고 쓰는 법도 모르고, 평생을 살며 만나는 그나마 지식인 비슷한 사람은 시골동네 신부가 고작인 경우가 흔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계층도 천문학자라거나 원양항해사와 같은 직업을 갖지 않는 한, 먹고 사는 것 혹은 당시 사회에서 교양으로 취급받던 분야와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해선 무지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지구구형론은 천문학이나 원양항해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때에나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당대에는 교양으로 취급받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